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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다 발사장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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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7 계획과 메치 === 사고로 K-7 계획은 중단되지 않았다.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제출된 뒤 시험은 1961년 9월 재개되었고, 10월 29일 K-7 2호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K-7은 1963년 실전 배치되어 사비에트 최초로 명령 후 30분 안에 발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이 되었다. 이후 K-7은 제7설계국의 부분궤도 폭격체계 「메치」의 발사체로 개량되어, 1967년 부분궤도 시험을 거쳐 1968년 실전 배치되었다. 사고가 남긴 가장 큰 손실은 사람이었다. 바비치의 사망으로 제3설계국은 수석설계자와 핵심 기술자 상당수를 한꺼번에 잃었고, 사비에트 탄도미사일의 유도 정확도 개선은 수년간 정체되었다. 한편 스테파노프가 살아남은 것은 이후 사비에트 우주개발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그날 발사대에 있었다면 제7설계국은 수석설계자와 시험부장을 동시에 잃었을 것이고, 이후 제7설계국이 주도한 메치, 무장 우주정거장 「크레포스트」, 위성 요격 무기 「야스트레브」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 그날 나를 벙커로 부른 전화는 크라슬리스크에서 발사 시각을 묻는 전화였다. 우리를 서두르게 만든 바로 그 목소리가 나를 살렸다.[br][br]사람들은 제7설계국이 살아남았다고 말하지만, 살아남은 것은 설계국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이었다. 설계국은 그날 발사대 위에서 절반이 죽었다. 나는 남은 절반과 새로 온 젊은이들을 데리고 다시 로켓을 만들었다. 그 로켓들이 무엇이 되었는지는 모두가 안다. 나는 그들이 그것을 원했을지 알지 못한다. > ---- > 예브게니 A. 스테파노프, 유고 회고록 《도면 위의 사람들》(1991)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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